서울 덕수궁의 비오는 가을

2013. 10. 29. 17:30지구별여행이야기/서울특별시

20131029

 

 

 

 

덕수궁을 한번도 가본적 없어서 찾아갔습니다.

 

 

 

 

 

대한문

 

 

 

 

 

 

 

매표소. 대한문을 지나 덕수궁 내로 들어가니..

가을의 상징중 하나인 노란 은행잎이 반겨주네요.

한그루의 은행나무만이 노란색이라 아직 가을 깊이 들어온것 같지 않은 풍경입니다.

 

 

 

 

 

 

 

 

 

 

 

 

 

대한문 일원

대한문의 본래 이름은 대안문 이었는데 1906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원래 궁궐의 정문은 남쪽의 인화문 이었는데, 환구단 건립 등으로 경운궁의 동쪽이 새로운 도심이 되자 동문이었던 대안문을 정문으로 삼았다.

1970년에 태평로를 확장하면서 서쪽으로 물러앉게 되었다.

대한문을 지나 건너게 되는 금천교는 1986년에 발굴하여 정비한 것이다.

이 다리를 건너 중화문 앞에 이르는 길이 궁궐의 중심 행차로였다.

 

 

 

 

 

 

 

 

덕수궁

덕수궁 터에는 월산대군(1454~1488)의 후손을 비롯한 왕족들과 고관들의 저택이 있었다.

임진외란으로 서울의 모든 궁궐이 불타 없어지자 선조는 이 집들을 수용하여 임시로 거처하는 행궁으로 사용하였다가,

광해군이 1611년에 재건한 창덕궁으로 어가를 옮기면서 별궁인 경운궁이 되었다.

이후 19세기 중엽까지는 궁궐로서 큰 역활이 없다가 1897년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경운궁을 대한제국의 으뜸 궁궐로 삼았고 많은 전각들을 새로 세워 궁궐의 격식을 갖추어 나갔다.

또한 근대화를 향한 고종의 의지에 따라 궁 안에 여러 서양식 건물을 세웠다.

그러나 1880년대 정릉동 일대는 각국 외교사절의 공관과 선교사들의 주택이 밀집해 있어서 경운궁의 궁역을 확장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기존의 미국.영국.러시아 영사관 사이로 궁역을 확장하다 보니 대지의 모양이 불규칙하게 된것이다.

1907년에 고종이 퇴위하면서 선황제의 거처가 되어 궁의 이름을 덕수궁으로 바꾸었으며, 태평로를 확장하면서 궁역이 축소되었다.

고종이 승하한 후에는 북쪽 선원전과 서쪽 증명전 일대도 매각되어 원래 넓이의 1/3만 남게 되었다.

1933년에는 중심 부분과 몇 개의 양관만 남고 대부분의 전각들이 철거된 후에 공원으로 조성되어 일반에 개방되었다.

현재는 중심부인 중화전 일원과 정관헌 및 석조전과 같은 양관들이 남아있다.

덕수궁은 임지왜란과 구한말이라는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으뜸 궁궐로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던 상징적 공간이었다.

또한 전통 규범 속에 서양식 건축을 수용한 근대적 궁궐이며, 주변 상황의 공간적 맥락에 맞추어 조성한 도시적 궁궐이었다.

 

 

 

 

 

 

 

 

 

 

 

 

 

 

 

 

 

함녕전과 덕홍전

 

 

 

 

 

 

 

 

 

 

 

 

 

 

 

 

 

 

 

 

 

 

 

 

 

 

정관헌

궁궐 후원의 언덕위에 세운 휴식용 건물로 이름에 걸맞게 조용히 궁궐을 내려보고 있다.

한국과 서양의 건축양식이 혼합된 건축물로, 1900년경 러시아 건축가 사바찐이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인조석 기둥을 줄지어서 내부 공간을 감쌌고, 동남서 세 방향에 베란다를 마련했다.

베란다의 기둥은 목조이며 기둥 상부에 청룡, 황룡, 박쥐, 꽃병 등 한국의 전통문양을 새겼다.

이 한양 절충의 이국적 건물안에서 고종은 커피를 마시며 외교 사절들과 연희를 즐겼다 한다.

 

 

 

 

 

 

 

 

 

 

 

 

 

 

 

 

 

 

 

 

 

 

 

 

 

 

 

 

 

 

 

 

 

 

 

 

 

 

 

 

 

 

 

 

 

 

 

 

 

 

중화전 일원

1902년에 임시 정전으로 쓰던 즉조당 남쪽에 행각을 두르고 중화전을 건축해 궁궐의 중심 영역으로 삼았다.

중화전은 원래 중층건물이었으나, 대화재로 이 일대가 모두 불타 버린 후, 1906년에 단층으로 규모를 줄여 재건하였다.

중화문과 행각도 함께 다시 세웠는데, 현재 행각은 동남쪽 모퉁이 일부만 남아있다.

중화전과 그 앞마당인 조정은 국가 의례를 치르기 위한 상징 공간이다.

2단으로 월대를 마련하고 바닥에 박석을 깔았으며 품계석과 삼도를 설치하는 등, 전통 궁궐 격식을 따랐다.

 

 

 

 

 

 

 

 

 

 

 

 

 

 

 

 

 

 

 

 

 

 

 

 

중화전

 

 

 

 

 

 

 

 

 

 

 

 

 

 

덕수궁을 더보고

덕구숭 돌담길을 걷고 싶었으나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일찍 덕수궁을 나섰습니다.

 

다음에 날 좋은날 천천히 다시 돌아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