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뮤지엄 미술작품 2층. 지하1층-제주도여행

2014. 3. 31. 13:40지구별여행이야기/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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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31 다빈치뮤지엄.박물관-레오나르도다빈치 - http://blog.daum.net/chulinbone/3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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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31 다빈치뮤지엄 발명품(레오나르도다빈치) 1층전시실 - http://blog.daum.net/chulinbone/3298

20140331 [제주카페] 다빈치뮤지엄카페-L.D.V CAFE(다빈치뮤지엄 내) - http://blog.daum.net/chulinbone/3299

20140331 [책] 레오나르도다빈치.위대한예술과과학 - http://blog.daum.net/chulinbone/3300

 

 

 

 

 

다빈치뮤지엄 2층에는 주로 그림들이 걸려있습니다.

물론, 진품은 아니지만, 레오나르도다빈치의 작품들을 볼 수 있고, 설명을 볼 수 있습니다.

 

 

 

 

 

도슨트(해설사)의 안내시간에 맞추면 그림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습니다.

 

 

 

 

 

 

 

암굴의 성모

이 작품은 아기예수와 세례 요한의 만남 장면을 그린 예배당 제단화로, 이 전에 거의 비슷한 구성의 그림이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도 소장되어 있다.

 

 

 

 

 

 

 

 

 

 

 

 

동방박사의 경배

이 그림은 두 번째 동방박사가 전통적으로 성찬식을 상징하던 유향을 아기예수에게 바치는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1483년 레오나르도가 밀라노로 가게 되어 미완성인 채로 남겨졌다.

 

 

 

 

 

 

 

 

 

 

 

 

그리스도의 세례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가 성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에게 세례를 주고 있는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당시 베로키오의 제자였던 레오나르도가 천사와 배경의 부분을 그렸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니,

왼쪽의 천사와 배경은 레오나르도가 그리고 베로키오는 오른쪽 요한을 그렸는데,

이 그림을 그리고, 레오나르도의 천재성을 인정한 베로키오는 그림은 그만 그린다고 붓을 꺽었다는 일화가 있다네요.

이후 베로키오는 조각에만 전념을 했다고 합니다.

 

 

 

 

 

 

 

 

 

최후의 만찬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기 전날, 열두 제자와 함께 만찬을 나누었다.(마태 26:20)'는 매우 낯익은 주제를 전무후무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은 기존의 전통적 방식을 뛰어 넘는 그의 독창성, 예리하면서도 정확한 형식미, 숭고한 주제를 다루는 뛰어난 방식 등 르네상스 전성기의 가장 뛰어난 성과로 평가된다.

당시 레오나르도가 템페라 기법을 사용한 까닭에, 완성된 직후 부터 안료가 떨어지기 시작하여 현재는 1999년 복원된 모습으로 남아있다.

 

템페라기법 :  난황.난백.아교질.벌꿀.무화과나무의 수액 또는 양이나 염소, 기타의 수피로 만든 콜로이드 물질 등 단독 또는 적당하게 안배한 것을

매개제로 써서 채색의 정착을 기한 불투명 물감 또는 이것으로 그린 그림이다.

 

 

 

 

 

 

최후의 만찬에 그려진 12명의 제자들은 각자의 특징이 있는데,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 이해가 쉽게 되네요.

 

 

 

 

 

 

 

 

 

 

 

 

수태고지

대천사 가브리엘이 성모의 집으로 찾아가'그녀가 성령의 아이를 잉태했음'을 알리는(누가 복음 1장16절에서 38장) '수태고지'의 순간이다.

(레오나르도는 백합, 흰 수건으로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적으로 표현했고, 가브리엘과 마리아의 얼굴 표정에 경건함과 놀라움을 적절히 표현했다.)

 

 

 

이 작품을 비스듬이 촬영한 이유는 해설사에게 들었는데,

실제 걸려있던 장소의 앞에는 기둥이 있어서 절대 정면에서 그림전체를 볼 수 없어서

비스듬히 옆에서 봐야 제대로 보이기 때문에 레오나르도는 원근감을 사용해서

팔의 길이 같은것을 다르게 해서 정면에서 보았을때는 팔의 길이가 비정상적으로 보이지만,

옆에서 보았을때는 정상적으로 보이도록 신경썼다고 하네요.

 

 

 

 

 

 

 

 

 

 

 

브누아의 성모

레오나르도가 스승인 베로키오로부터 독립하여 그린 첫 작품으로 젊은 화가들에 의해 폭넓게 모방되었다.

 

 

 

 

 

 

세례자 요한

이 작품은 다 빈치의 마지막 걸작으로 추정되며, 그는 평생에 걸쳐 연구한 스푸마토와키아로스쿠로 기법으로 젊은 세례자 요한을 표현했다.

키아로스쿠로 : 밝은 곳으로부터 어두운 곳으로 가는 점진적인 해조에 의하여 삼차원성을 표현하는 명암법.

 

 

 

 

 

 

카네션을 든 성모

이 작품은 레오나르도가 스승인 베로키오의 공방에서 즐겨 그리던 성모상과 형식적으로 유사한 초기 회화작품이다.

 

 

 

 

 

 

물레의 성모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원작이 분실된 후 이 작품은 현재 모작으로만 남아있으며, 아기예수가 응시하고 있는 물레는 그리스도가 처형을 당한 십자가와 마리아의가정생활을 암시한다.

 

 

 

 

 

 

 

미상의 부인(아름다운 철공상 여인)

이 작품은 주인공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지만 학계에서는 의상과 머리모양으로 보아 밀라노의 귀족 부인으로 보고 있다.

(이 작품은 일명 <아름다운 철공상 여인>이라고도 불리는데 '페로니에'는 모델의 이마에 부착된 장식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젊은 음악가의 초상

작품의 모델이 오른손에 악보를 들고 있기 때문에 음악가로 추정되고 있으나,

레오나르도의 작품인가에 대한 의문이 꾸준히 제기되는 그림이다.

 

 

 

 

 

 

체칠이아 갈레라니의 초상(담비를 안은 여인)

이 작품은 레오나르도의 후원자(루도비코 스포르차)의 연인이었던 '체칠리아 갈레라니'의 초상화로 알려져 있다.

(그는 15세기 이탈리아 초상화에서 일반적이었던 측면상의 경직된 자세를 탈피하여, 동세와 시선이 서로 반대 방향을 이루는 혁진적이고 독특한 구도의 초상화를 구현했다.)

 

 

 

 

 

 

 

지네브라 데 벤치의 초상

이 초상화의 주인공 '지네브라 데 벤치'는 15세기 후반 피렌체에서 미모와 지성으로 유명했던 여성으로(루이지 디 베르나르도 니콜리니)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지하 카페에 있던 비너스의 탄생이라는 작품으로

레오나르도와 동시대의 작가인 산드로보티첼리의 작품입니다.

 

해설사의 여러가지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비너스의 탄생

<프리마베라>와 함께 산드로 보티첼리의 최대 걸작이다.

1485년경 보티첼리가 메디치가의 로렌초 디 피에르프란체스코를 위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로렌초가 자신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주문한 그림이라고 하며,

당시 철학자들이 설명한 인간의 영혼을 신플라톤적 해석을 통하여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보티첼리 특유의 부드러운 곡선과 섬세함 세부 묘사, 그리고 우아하고 기품 있는

여성상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신체 표현에 있어 양감이나 무게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고, 비례나 자세가 왜곡되어 있는 것 또한 보티첼리 작품들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비너스는 오른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왼손과 머리카락으로는 음부를 가리고 있는데,

이러한 자세는 비너스 푸티카, 즉 정숙한 비너스라는 고전조각의 특정 유형을 따른 것이다.

그리스 최고 화가 아펠레스의 <물에서 태어난 아프로디테>를 묘사한 로마의 학자 플리니우스의 글이 보티첼리 그림의 전체 구성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간주된다.

 

 

 

 

 

 

 

 

 

 

아르놀피 부부의 초상

루카 출신의 조반리 아르놀피니와 조반나 체나미의 결혼식 초상화이다.

실내는 비교적 어두컴컴한 반면 바깥은 햇빛에 빛나며 나무에는 열매가 달려있다.

벽에 걸린 거울에는 또 하나의 장면이 비치고 있다.

방에 들어오는 두 사람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화가의 모습이다.

벽에는 라틴어'johannes de Eyck fuit hic 1434(얀 반 에이크 여기에 있었다. 1434년)'

라고 씌어 있어, 에이크가 결혼식의 증인임을 알 수 있다.

 

플랑드르 미술에서 보이는 수많은 상징이 돋보이는 그림이다.

맹세를 상지앟는 남자의 손, 순종과 겸손을 상징하는 여자의 손 위치, 중앙에 있는 충성을 상징하는 그리폰 테리어 강아지,

결혼식을 상징하는 양초 등을 들 수 있다.

벽에 걸린 수정 묵주와 거울은 신성함과 순결을 상징한다.

전체적으로 냉엄하면서도 신비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에이크는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물건을 전체적 분위기에 맞게 구성하였다.

화면 맨 앞에 있는 인물과 뒤로 보이는 실내의 좌우 벽이 잘려나간 구도에 과감한 원근법을 사용하였다.

에이크는 세밀한 묘사가 가능한 유화기법을 최대한 살렸는데 여자의 드레스 가장자리에 둘러진 모피의 잔털은 실제 다가가면 그 느낌이 전해질 정도로 섬세하게 그려졌다.

 

 

 

 

 

 

 

 

성모와 아기 예수

레오나르도 파 화가로 다빈치의 수제자였던 베르나르디노 루이니, 이탈이아 마조레호반의 루이노 출생으로 처음에는 밀라노에서 브라민티노와 보르고네의 영향을 받았으나,

1510년경 당시 말라노에 머물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제자가 되면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다른 화가들처럼 단순히 스승을 모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롬바르디아적 자연주의를 지키면서 신비감을 주는 레오나르도의 명암법과 라파엘로풍의 우아함을 도입하여,

섬세하고 서정성이 넘치는 독자적 화풍을 확립해 르네상스 융성기의 고전양식을 보여주었다.

 

 

 

 

 

 

 

오색방울새의 마돈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의 예술을 완성한 3대 거장으로 뽑히는 라파엘로는 친구였던 모직 상인 로렌초 나시의 결혼 기념 선물로 그린 그림이다.

 

오색방울새는 엉겅퀴와 가시나무를 먹는다 하여 그리스도 고난을 상징하는 새이다.

오색방울새는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를 때 그의 이마에 박힌 가시를 부리로 떼어냈다고 한다.

오색방울새는 이후 그리스도의 수난을 상징하게된다.

 

1547년에 나시가저택 이 붕괴되면서 17조각으로 깨지는 수난을 겪게된다.

그동안 못질과 이음매의 덧칠 등으로 원화가 손상된 채로 보존되어 오다가 500년이 지나서야 복원을 시도하고, 우피치 미술관에서는 긴 시간에 걸쳐 복원을 하였다.

온갖 첨단 기술을 이용해 찢겨진 부분들을 완전히 재결함하는데 성공하여 원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이에 투여된 전문 인력만 50명이고, 복원 기간이 10년이나 걸렸다.

 

 

 

 

 

 

 

 

초원의 성모

16세기 초에 아기 세례 요한이 함께 등장하는 일련의 성 모자상을 제작하였는데,

안정감 있는 삼각구도를 통해 인물들간의 유대와 심리를 잘 포착한 것이 특징이다.

17세기까지 피렌체의 타데이 가문에 소장되어 있었으며, 라파엘로가 피렌체의 부유한 상인이자 예술 애호가였던 타데오 타에이를 위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1733년부터 빈 미술사 박물관에서 소장해 오고 있으며, "벨베데레의 성모"라 불리기도 한다.

 

성 모자와 어린 세례 요한은 넓게 펼쳐진 초원을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성모의 우아한 얼굴에는 아기 예수를 향한 어머니의 애정이 여실히 드러난다.

금빛 테두리가 둘러진 그녀의 붉은 상의는 푸른색 치마와 대조를 이루는데, 여기서 붉은색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그리고 푸른색은 교회를 상징한다.

즉, 라파엘로는 성모의 의상을 통해 교회와 예수의 희생간의 결합을 나타낸 것으로, 이러한 표현법은 루브르 미술관에 있는 세례 요한과 함께 있는 성모와 아기  예수를

포함한 대부분의 라파엘로의 성모상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라파엘로 뿐 아니라 이 시기의 많은 이탈이아 화가들은 자연 풍경을 배경으로 성 모자와 세례 요한이 함께 나오는 그림을 많이 남겼는데,

전체적으로 피라미드 형태를 이루는 것이 공통된 특징이다.

이 구도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성 안나와 있는 성 모자>에서 처음 시도한 것으로, 16세기 초에 대한히 유행하였다.

 

 

 

 

 

 

 

 

트릭아트 형태로 그려진 그림도 있네요.

 

 

 

 

 

 

 

 

 

 

모나리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

위해한 화가였습니다.